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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를 연고주의 사회라고 평가하는 일이 정당하다면 아시아적 가치의일부를 이루는 것이 연고주의라는 평가도 정당화 할 수 있다.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 시비가 결정되거나 그 가치가 매겨질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런 개념정리가 지금 그렇게 유용하게 작용할 것이라고는 전연 예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에서 연고주의를 중심한 아시아적 가치론에 관한 학술화의가 열린다고 예고되었다.(주1) 사실은 그렇게 학술회의까지 열어야할 만큼 소란스러울 필요는 없으며 그런 류의 주제어만으로는 핵심적인 학술적 논제는 못되는 것 같은데 이왕 열린다면 좋은 결론이 나오길 바란다.

왜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하면 연고주의 그 표면적 의미에서만 이야기하여 그 논급의 깊이의 부족을 항상 지니고 이야기돼왔기 때문이다.

아시아적 가치로서 연고주의를 긍정적으로 보는 쪽이나 그 반대이거나 보다 중요한 본질을 놓지고 있다는 생각을 금하기가 어렵다.

연고주의에 대한 사회적 주장은 많아왔고 유교를 공격하는 중요 무기로도 사용되었다. 환란이발생 했을 때 일부 경제학자들은 연고주의를 내세워 유교에 그 원인을 돌렸었다. 군사정권을 비판할 때도 현재의 정치상황을 지역주의로 비판하거나 패거리 정치로 매도할 때도 유사한 맥락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매거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나는 그러한 주장들이 그야말로 주장을 위한 주장에 그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핵심을 놓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르스 커밍스의 글에서 한국에 대한 본질적 발언을 볼 수 있다. <주2>

“한국은더 이상 유교적 덕(德)과 통치술이 빼어난 도(道)의 나라가 아니라 급속한 산업 성장, 전속력으로 치달은 근대화, 세계정상급 인재의 화신이 됐다”



이 글이 더 본질적인 것이라고 보는 것은 중요한 핵심 문제를 잘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근년들아 아시아의 유교전통에 새로운 희망을 거는 세계적 석학들의 주장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과 그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그의 한국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한국이 유교의 중심국가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연고주의는 무엇인가?
반만년 우리 역사상 그런 생경한 용어는 없었다.
연고주의가 무슨 이념이 되고 사상이 되는 듯이 말하는 것은 우리의 세련되고 깊은 정신문화에 대한 극히 난폭한 폭행과 다름이 없다.

지금 쓰는 의미의 <연고주의>라는 말은 요즘의 말이며 유교적 언사는 전연 아니다. 그것이 더구나 아시아적 가치라고 말한다면 더 할말이 없을 정도이다.

지금의 연고주의는 해방후의 일시적인 시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말로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연고주의를 유교적인 것으로 말하게 되는가?


첫째 원인은 유교에 대한 이해의 결여 때문이다.
유교에 연고주의는 없다.유교에는 공심(公心)을 유지하라는 말은 있으나 사심(私心)을 가져도 된다는 말은 전연 없다.

사적이고 개인적인 나의 삶과 그 확대영역으로서의 나의 가족의 삶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 개인주의 가족주의를 이념으로 표방한 일은 없었다.

오히려 가족의 내부에서 그리고 나 자신의 내부에서 보편적 공의(公義)를 추구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을 뿐이었다.

친친(親親)의 원칙은 나 개인 나의 가족 내부의 상황에서 지켜야할 공의를 말한 것이었다. 공경과 사랑을 효도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

개인 사회 국가적인 보편 차원에서는 주지하듯이 <인의예지>가 주장되었다. 어떻게 <인의예지>가 <연고주의>와 동일시 될 수 있는가? 학술회의라면 적어도 <인의예지>와 연관된 주제이어야한다.예를들어 <예>는 우주론과 인생론과 같은 철리의 창조적이고 설계적인 실천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연고주의>가 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주제가 어긋난 논의가 무성한 것이 현재의 우리 사회이다. 어떤 이들은 철학자를 비하하여 <아무도 묻지 않는 것을 묻는 사람>이라고 비아냥대기도하지만 그들은 물어야할 것을 결국 묻고 있다. 우리는 물어야할 것은 묻지 않고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을 묻고 있으니 그들은 무엇을 전공하는 이들인가?오직 묻고 싶다.



하이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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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2일 서울대 국제 세미나 논쟁 예고

중앙일보 2001-11-01 13면 (문화) 10판 기획.연재 1565자
한국의 연고주의는 서구의 시장이 야기한 탈인격화를 넘어선 새로운 대안인가, 아니면 사회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가로막는 전근대적 유물인가. 이에 관한 열띤 토론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뤄진다.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학과장 이온죽)는 학과 개설 20돌을 맞아 2~3일 서울대 호암 컨벤션 센터에서 '지구촌 시대의 신뢰회복과 신뢰구축'이라는 주제로 국제 세미나를 연다.
특히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옹호론자인 유석춘(연세대.사회학)교수와 이를 비판하는 이재열(서울대.사회학)교수가 참석할 제4분과 '전통가치'에서 치열하게 토론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외의 지식사회에서는 소위 '아시아적 가치'가 고도성장이라는 일정한 효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가 야기한 사회적 투명성 결핍과 보편적 가치의 훼손 때문에오늘의 사회적 위기를 가져왔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유석춘.함재봉(연세대.정치학)교수 등은 대중학술지 '전통과 현대'등을 통해 한국의 연고주의가 과거에는 물론 오늘날에도 시대적 적합성을 잃어버린 서구적 가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유용한 자원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유교수는 발표를 통해 종친회.향우회.동창회 등 연고주의가 어떻게 '사회적 자본'으로서 작동하는지 설명하고, 사회적 자본의 형태와 조건에 따라 시장의 작동방식도 모습을 달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전통적 규범과 도덕을 전면적으로 해체하면서 이뤄진 서구의 근대화와 달리 한국사회는 탈근대의 전개에 필요한 사회자본, 즉 연고주의를 풍부하게 내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 연고주의야말로 "서구 근대 시장이 탈인격화한 개인을 다시 공동체적 관계 속으로 복원시킬 수 있는 탈근대의 유용한 자원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이교수는 개념의 모호성을 비집고 들어간다. 거래비용을 낮추고 집단적 효율성을 발휘한 연고주의의 일면만을 본 연고주의 옹호론자들은 '연고주의=신뢰의 체계=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것'이라는 잘못된 단순 도식에 매여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시아와 유럽의 주요 국가에서 연고주의가 작동하는 사회적 맥락을 분석한 결과 '투명성'이 국가 경쟁력과 깊은 연관관계가 있음을 밝힌다.
강한 권력서열 체계와 집단주의적.인격주의적 태도를 지니고 있는 싱가포르, 그리고 이와 반대로 개인주의적 성향과 상대적으로 약한 권력서열 체계를 지니고 있는 일본이나 유럽 국가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 바로 투명성이라는 것.
이를 통해 이교수는 연고주의가 긍정, 혹은 부정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중립적 가치'라는 점을 입증하려 한다.
이는 기존의 '아시아적 가치'비판론자와 달리 국가 경쟁력이 연고주의보다는 투명성과 더 깊은 인과관계가 있음을 보임으로써 '연고주의=신뢰=긍정적인 것'이라는 '아시아적 가치'옹호자들의 기본 전제를 비판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기존의 '아시아적 가치'논쟁은 개념적 모호성 속에 숨어 다소 이데올로기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주제가 향후 우리 사회의 전망과 관련된 중요한 주제인 만큼 이교수의 지적처럼 이제 실증적으로 접근해 개념적 모호성을 제거함으로써 효과적인 논쟁으로 이끌어 갈 필요가 있다.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주2>


책 / 브루스 커밍스의 애정어린 '한국론'
한국일보 2001-11-02 34면 (문화) 30판 기획.연재 1591자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창작과 비평사 발행
오랫동안 한국 현대사 연구에 몰두해 온 미국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시카고대 교수)에 대해 일반 대중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차가운 푸른색이거나 불순한 붉은 색일 것이다.
엄청난 자료와 끈질긴 연구를 통해 복잡다단한 한국전쟁을 차갑고 단호하고 비판적인 수정주의의 입장으로 규정한 점이 그렇고, 그에 따라 한국 내에서 금기시해 온 좌파 성향의 젊은 역사학자를 양산해냈다는 점이 그렇다.
심지어 그는 “한국전쟁은 남한이 일으켰다”고 주장한 학자로 오해받아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는 이땅의 보수파로부터 매우 위험하고 적대적인 이방인으로 대우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발간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창작과 비평사)를 읽고 난 후 느낄 수 있는 그의 색조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는 ‘따뜻한’ 붉은 색이다.
그는 이 책에서 30여 년의 인연을 맺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최대한의 성의와 애정을 담아 설명하고 있다.
책 제목은 현대사이지만 이 책은 한국의 고대에서 현대까지를 아우르는 미국 역사학자의 시각을 담고 있으며, 남한과 북한, 심지어 미국에 사는 한국인까지를 조명하는 구체적이고 고급스러운 ‘한국론’을 기술하고 있다.
물론 그가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한국전쟁의 원인을 ‘남북한 내부의 모순이 해방전후사의 공간 속에서 폭발한 것'으로 주장한 학문적 소신은 굽히지 않고 있다.
한국과 나머지 세계와의 관계, 특히 미국과의 관계, 그리고 냉전구조 속의 존속이라는 주제, 한반도의 통일방식 등 광범위한 한국의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에 통찰하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몇 안 되는 거물급 한국 연구자로서 미국인을 포함한 소위 선진국 사람들의 ‘한국인에 대한 조악하고 불공정한 인상’의 잘못된 점을 비판, 수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단군신화를 언급하는 등 통사적 관점에서 한국문화의 근원을 설명한 것은 한 마디로 한국에 대한 외부의 상투적인 표현과 상상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그는 한국전쟁에 대해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갈등과 혼란의 세기도 만약 통일된 한국이 한국인이 말하는 그런 자유를 가질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비극은 전쟁이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한국인에 대해서는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그리고 한반도 남북 어디에 있든, 한국인들은 대단한 가족애와 교육의 미덕에 대한 놀라운 믿음을 지닌 기백이 넘치고 근면한 도덕적인 사람들이다. 반세기 동안 한국인들의 생활에 깊숙이 관여했으면서도 아직도 한국인을 모르는 미국이라는 나라로부터의 여태껏 받아온 대접보다는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1997년 영어권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쓴 것이다. 저자는 이번 한국어판 발행을 위해 최근까지의 중요한 변화를 책 속에 추가로 수록하는 성의를 보였다.
스스로 고려 우왕(禑王)의 후손을 아내로 두고 있다고 설명하는 저자는 “내란에 의해 완성된 자유를 지닌, 통일되고 당당하고 근대적인 한국을 상상해볼 때”라고 말했다.
김철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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