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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전략이라는 말이 성립 가능한말인가? 하고 묻는다면 아마 그것이 무슨 물음이 되는가 반문하는 이가 많을줄안다. 그러나 전통적 이념에서는 분명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최근 정체없는 국가전략이라는 용어가 너무 남용되고 있어 간과해둘 수가 없지않은가 한다.
전략이란 전투나 전쟁의 책략이라는 말이다. 혹 은운유적으로 사용한 문학용어라면 "국가전략"이라는 말이 그렇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의 중심과 연관된 언급이라면 그것은 중대한 문제를 야기한다. 한 나라의 영위를 전쟁적 상황으로 인식해야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회가 아무리 심각한 갈등이 넘쳐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국제정세가 더없이 심각한 경쟁과 살벌함으로 넘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 영위의 근간을 전략적 차원에서 인식하는 것은 힘을 위주로한 서구의 깊이 없는 정치노선을 맹종하는 것일 뿐이다.
동양적 사유의 깊이와 균형된 사려의 전통을 국가-역사 전통의 생명으로 부활하여야할 책무를 지녔다고 보아야할 인식 위에서 볼 때 전략논은 천박하기 그지없는 지엽론이다. 동시에 자신의 사상과 문명 정치의 찬연함을 돌아보기보다는 작은 눈앞의 문제를 위하여 조상의 그 교전인 고전을 팽개치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다.
전략 전술론은 전쟁상황에 대응하는 일부 부처에서 논의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리고 문화대국으로 거듭나야할 책무를 버리고 소국으로 스스로 전락하고자 자처하는 자포자기의 행동일 뿐이다.
우리의 역사적 믿음과 정신은 문화대국의 길을 갈 수 있는 탄탄대로를 오랜 동안 열어왔다.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인데 지금 그 정당한 길을 포기하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야하겠다.
문화대국이란 무슨 말인가.단적으로 세계정신에 투철한 것이 대국일 것이다. 전통적 개념으로는 천하개념에 충실한 이념으로 국가를 영위하려는 의지로 유지되는 나라를 말한다. 우주정신과 개인적 양심의 성실한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 그 책무라는 뜻이다.
오늘날 세계의 대국이라는 나라들은 이미 대국의 지위를 스스로 버리고 있다. 국토의 크기나 경제적 부강함이 대국의 요건은 아니다. 그것은 초기 역사시대에 이미 청산되었어야할 원시역사의 산물일 뿐이다. 무력을 쓰기를 좋아하는 나라는 물질과 경제의 풍요함이나 지식의 양적 폭발에도 전연 상관없이 원시국가라고 불러 마땅할 것이다.
오늘날은 이미 진정한 대국이 없어진지 오래되었다. 그런 시대에 우리는 소국을 자처하고 있을 뿐이다. 자칭 소국이 대국이 될 수 있는 길은 무력의 길이나 전략의 길이 아니다. 정당한 명분을 위주로한 이상정치를 추구하는 길이 바로 그 길이다.
세계가 글로벌한 역사를 열기 시작한 지금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이제는 개인적 인격과 세계라는 커다란 삶의 명제가 세워질 것이며 각 국가는 그 명제를 풀어나아가는 중심기관으로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그 대세를 거스리는 국가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현실의 여러 문제들로 심각하고 지난한 곤란이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그러한 본분은 촌시도 망각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같은 나라가 지향해야할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상과 정당성에 빼어난 성과를 지향하는 의미의 진정한 대국화 즉 작은 거인의 길 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물리적 힘과의 충돌을 환기하거나 불러서는 아니될 것이므로 살벌한 용어는 스스로 극히 금기하여야할 것이다.
우리는 역사상 그리고 현재에 힘에 의한 침해는 받아왔지만 결코 중화주의와 같은 자존적이고 좁은 의식을 가져본 적이 없다.
변경의 저급문화의 나라들도 대개 새도해 본 적이 있는 침략과 패권주의를 지향해본 적도 없다. 로마를 무너뜨린 게르만인적 호기를 부려본 적도 없고 중국대륙을 접수한 수없는 북방 유목민 같은 정복욕을 불태운 적도 없다. 근세의 추축국같은 세계정복이라는 무모한 야만적 기도를 해 본 적도 없으며 여진족이나 왜구 같은 힘이 약한 대상에게도 핍박보다는 포용책을 쓰는 너그러움이 있었다. 그 이상은 작은 듯하지만 고결한 것이고 우리 삶은 힘겨웠지만 조용히 빛나는 것이었다. 또 성리학 같은 우주적 이상으로 나라를 이끌어가려한 역사가 어디 또 있었던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정치는 명분이라는 공자의 말씀이 오늘에 그대로 생생히 유효하다.
............................................
<주1>
한국의 국가전략을 읽으면
중앙일보 2001-11-10 43면 (문화) 10판 기획.연재 2005자
한국 사회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하지만 정작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중장기 전략을 담은 처방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정치인들이 선거에 닥쳐 급조한 홍보물이나 보고서 수준을 넘어 지식 대중화의 시대에 대중의 이해와 공감을 자아내며 개척정신을 추동할 출판물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 점은 근현대 이래 뚜렷하게 발견되는 국내 지식 엘리트들의 한계이기도 하다.
역사.인간.경제.자유.평등.교육.환경 그리고 지역 갈등과 남북한 대립과 통일에 이르기까지 포괄적 전망을 담은 미래학이 부족하다는 점은 현재 당면한 위기보다 더 심각한 근원적 위기라 할 수 있다.외우(外憂)만을 탓하기 전에 내환(內患)을 정비하는 전략적 지혜를 어디서 얻어야 할까.
『국가전략』이란 잡지의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명세(세종연구소 국제정치분야)실장은 "당장 떠오르는 추천할 만한 국가전략서가 없다"고 말했다. 강실장은 또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처럼 정당의 정치적 목표를 넘어 중립적 입장에서 미래를 전망하는 민간단체도 드문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무엇부터 읽을까'의 주제를 '한국의 국가전략'으로 잡은 이유는 앞에서 소개한(41면 리뷰 참조) 김경일(상명대 중문과)교수의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라는 도발적 제목의 책 때문이다. 인문학자가 쓴 일종의 국가전략서라 할 수 있는 김교수의 책을 넘어 전반적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한 것이다. 김교수의 책이 우리 사회가 나아갈 포괄적 전망을 담은 것은 아니지만 공론의 장에서 토론할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유교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적 가치와 서구의 합리적 민주주의의 접점을 찾는 함재봉(연세대 정외과)교수의 『탈근대와 유교』『유교 자본주의』(전통과현대)는 김경일 교수와 다른 시각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책이다.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유교전통이 한국 사회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다면 그것을 적극 활용한다는 관점에서 유교의 도덕성과 서구 민주주의의 효율성의 장점을 취합해 한국형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정치와 경제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활발하게 국가전략적 차원의 책을 펴내는 곳은 삼성경제연구소와 세종연구소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최근 펴낸 『자유주의란 무엇인가』(이근식 외 지음)는 철학.정치학.사회학.역사학.경제학 등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여 함께 토론한 결과물이란 점에서 국가전략의 학제간 종합연구의 필요성을 부각시킨 책이다.
서구 근대사회를 이끈 자유주의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가운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시 확립이란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요소를 극복하고 지속적 발전을 해나갈 방향을 모색한다.
올 초에 나온 『국가전략의 대전환』(유상영 외 지음)은 한국의 국가전략을 안보전략.번영전략.조화전략의 3가지 축으로 분류하면서, 글로벌.디지털.네트워크로 대변되는 21세의 변화된 국제경제환경은 3대 축 가운데 어느 것도 소홀히 해선 안됨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국내외 정치.경제와 국방안보 등의 책을 분야별로 펴내고 있는 세종연구소는 『국가전략』이란 잡지를 통해 논의의 확산을 꾀하고 있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에서도 지속적으로 국가전략서를 펴내 빈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런데 "정권과 관련돼 있다는 점이 빛을 못보게 한다"고 위원회에 참여한 임혁백(고려대 정외과)교수는 아쉬워한다. 서진영(고려대 정외과)교수 등이 엮어 펴낸 『21세기 한국의 비전』『행동주체별 대응전략』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삶과꿈)3부작과 『새천년의 한국과 세계』(임혁백 지음, 나남) 등은 세계화에 대응하여 어떻게 개혁을 추진하고 공생의 패러다임을 창출할 것인가를 모색한다.
미래학은 미국을 중심으로 지난 세기 중반 이래 가장 인기있는 품목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수입한 미래학'은 많아도 우리의 삶에 뿌리를 둔 미래 공학적 접근은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작지만 강하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내실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비전을 제시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은 한국의 미래학이 담당해야할 몫일 것이다.
배영대 기자
전략이란 전투나 전쟁의 책략이라는 말이다. 혹 은운유적으로 사용한 문학용어라면 "국가전략"이라는 말이 그렇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의 중심과 연관된 언급이라면 그것은 중대한 문제를 야기한다. 한 나라의 영위를 전쟁적 상황으로 인식해야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회가 아무리 심각한 갈등이 넘쳐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국제정세가 더없이 심각한 경쟁과 살벌함으로 넘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 영위의 근간을 전략적 차원에서 인식하는 것은 힘을 위주로한 서구의 깊이 없는 정치노선을 맹종하는 것일 뿐이다.
동양적 사유의 깊이와 균형된 사려의 전통을 국가-역사 전통의 생명으로 부활하여야할 책무를 지녔다고 보아야할 인식 위에서 볼 때 전략논은 천박하기 그지없는 지엽론이다. 동시에 자신의 사상과 문명 정치의 찬연함을 돌아보기보다는 작은 눈앞의 문제를 위하여 조상의 그 교전인 고전을 팽개치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다.
전략 전술론은 전쟁상황에 대응하는 일부 부처에서 논의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리고 문화대국으로 거듭나야할 책무를 버리고 소국으로 스스로 전락하고자 자처하는 자포자기의 행동일 뿐이다.
우리의 역사적 믿음과 정신은 문화대국의 길을 갈 수 있는 탄탄대로를 오랜 동안 열어왔다.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인데 지금 그 정당한 길을 포기하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야하겠다.
문화대국이란 무슨 말인가.단적으로 세계정신에 투철한 것이 대국일 것이다. 전통적 개념으로는 천하개념에 충실한 이념으로 국가를 영위하려는 의지로 유지되는 나라를 말한다. 우주정신과 개인적 양심의 성실한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 그 책무라는 뜻이다.
오늘날 세계의 대국이라는 나라들은 이미 대국의 지위를 스스로 버리고 있다. 국토의 크기나 경제적 부강함이 대국의 요건은 아니다. 그것은 초기 역사시대에 이미 청산되었어야할 원시역사의 산물일 뿐이다. 무력을 쓰기를 좋아하는 나라는 물질과 경제의 풍요함이나 지식의 양적 폭발에도 전연 상관없이 원시국가라고 불러 마땅할 것이다.
오늘날은 이미 진정한 대국이 없어진지 오래되었다. 그런 시대에 우리는 소국을 자처하고 있을 뿐이다. 자칭 소국이 대국이 될 수 있는 길은 무력의 길이나 전략의 길이 아니다. 정당한 명분을 위주로한 이상정치를 추구하는 길이 바로 그 길이다.
세계가 글로벌한 역사를 열기 시작한 지금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이제는 개인적 인격과 세계라는 커다란 삶의 명제가 세워질 것이며 각 국가는 그 명제를 풀어나아가는 중심기관으로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그 대세를 거스리는 국가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현실의 여러 문제들로 심각하고 지난한 곤란이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그러한 본분은 촌시도 망각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같은 나라가 지향해야할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상과 정당성에 빼어난 성과를 지향하는 의미의 진정한 대국화 즉 작은 거인의 길 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물리적 힘과의 충돌을 환기하거나 불러서는 아니될 것이므로 살벌한 용어는 스스로 극히 금기하여야할 것이다.
우리는 역사상 그리고 현재에 힘에 의한 침해는 받아왔지만 결코 중화주의와 같은 자존적이고 좁은 의식을 가져본 적이 없다.
변경의 저급문화의 나라들도 대개 새도해 본 적이 있는 침략과 패권주의를 지향해본 적도 없다. 로마를 무너뜨린 게르만인적 호기를 부려본 적도 없고 중국대륙을 접수한 수없는 북방 유목민 같은 정복욕을 불태운 적도 없다. 근세의 추축국같은 세계정복이라는 무모한 야만적 기도를 해 본 적도 없으며 여진족이나 왜구 같은 힘이 약한 대상에게도 핍박보다는 포용책을 쓰는 너그러움이 있었다. 그 이상은 작은 듯하지만 고결한 것이고 우리 삶은 힘겨웠지만 조용히 빛나는 것이었다. 또 성리학 같은 우주적 이상으로 나라를 이끌어가려한 역사가 어디 또 있었던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정치는 명분이라는 공자의 말씀이 오늘에 그대로 생생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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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한국의 국가전략을 읽으면
중앙일보 2001-11-10 43면 (문화) 10판 기획.연재 2005자
한국 사회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하지만 정작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중장기 전략을 담은 처방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정치인들이 선거에 닥쳐 급조한 홍보물이나 보고서 수준을 넘어 지식 대중화의 시대에 대중의 이해와 공감을 자아내며 개척정신을 추동할 출판물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 점은 근현대 이래 뚜렷하게 발견되는 국내 지식 엘리트들의 한계이기도 하다.
역사.인간.경제.자유.평등.교육.환경 그리고 지역 갈등과 남북한 대립과 통일에 이르기까지 포괄적 전망을 담은 미래학이 부족하다는 점은 현재 당면한 위기보다 더 심각한 근원적 위기라 할 수 있다.외우(外憂)만을 탓하기 전에 내환(內患)을 정비하는 전략적 지혜를 어디서 얻어야 할까.
『국가전략』이란 잡지의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명세(세종연구소 국제정치분야)실장은 "당장 떠오르는 추천할 만한 국가전략서가 없다"고 말했다. 강실장은 또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처럼 정당의 정치적 목표를 넘어 중립적 입장에서 미래를 전망하는 민간단체도 드문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무엇부터 읽을까'의 주제를 '한국의 국가전략'으로 잡은 이유는 앞에서 소개한(41면 리뷰 참조) 김경일(상명대 중문과)교수의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라는 도발적 제목의 책 때문이다. 인문학자가 쓴 일종의 국가전략서라 할 수 있는 김교수의 책을 넘어 전반적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한 것이다. 김교수의 책이 우리 사회가 나아갈 포괄적 전망을 담은 것은 아니지만 공론의 장에서 토론할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유교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적 가치와 서구의 합리적 민주주의의 접점을 찾는 함재봉(연세대 정외과)교수의 『탈근대와 유교』『유교 자본주의』(전통과현대)는 김경일 교수와 다른 시각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책이다.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유교전통이 한국 사회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다면 그것을 적극 활용한다는 관점에서 유교의 도덕성과 서구 민주주의의 효율성의 장점을 취합해 한국형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정치와 경제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활발하게 국가전략적 차원의 책을 펴내는 곳은 삼성경제연구소와 세종연구소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최근 펴낸 『자유주의란 무엇인가』(이근식 외 지음)는 철학.정치학.사회학.역사학.경제학 등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여 함께 토론한 결과물이란 점에서 국가전략의 학제간 종합연구의 필요성을 부각시킨 책이다.
서구 근대사회를 이끈 자유주의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가운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시 확립이란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요소를 극복하고 지속적 발전을 해나갈 방향을 모색한다.
올 초에 나온 『국가전략의 대전환』(유상영 외 지음)은 한국의 국가전략을 안보전략.번영전략.조화전략의 3가지 축으로 분류하면서, 글로벌.디지털.네트워크로 대변되는 21세의 변화된 국제경제환경은 3대 축 가운데 어느 것도 소홀히 해선 안됨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국내외 정치.경제와 국방안보 등의 책을 분야별로 펴내고 있는 세종연구소는 『국가전략』이란 잡지를 통해 논의의 확산을 꾀하고 있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에서도 지속적으로 국가전략서를 펴내 빈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런데 "정권과 관련돼 있다는 점이 빛을 못보게 한다"고 위원회에 참여한 임혁백(고려대 정외과)교수는 아쉬워한다. 서진영(고려대 정외과)교수 등이 엮어 펴낸 『21세기 한국의 비전』『행동주체별 대응전략』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삶과꿈)3부작과 『새천년의 한국과 세계』(임혁백 지음, 나남) 등은 세계화에 대응하여 어떻게 개혁을 추진하고 공생의 패러다임을 창출할 것인가를 모색한다.
미래학은 미국을 중심으로 지난 세기 중반 이래 가장 인기있는 품목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수입한 미래학'은 많아도 우리의 삶에 뿌리를 둔 미래 공학적 접근은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작지만 강하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내실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비전을 제시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은 한국의 미래학이 담당해야할 몫일 것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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