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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배경적 언급

오늘 언론에 우리의 정신 문화적 정체성과 연관한 중요한 두 방향의 소식이 있었다. 두웨이밍 교수의 계속되는 유교적 발언이 보도되고 있는 사실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섰던 김경일 교수가 <나는 동이족이 그립다>는 또하나의 책을 썼다는 보도인데 특히 후자의 경우는 <그 도발적 주장은 또 한차례 격론을 불러 일으킬 것> 이라고 예단하는 취재기자의 코멘트가 붙여진 점도 주목하고자 한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두 소식 자체가 중대하고 깊은 의미를 스스로 지니고 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매체적 영향성의 심대성에 비추어서 예의 주목하고 의미를 가려서 잘 소화해야할 것이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2>동이족을 오랑캐로 볼 것인가

동이족의 이(夷)는 <오랑캐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는 중국 후대의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고 그 원 글자에 오랭캐라는 의미는 전연 함축되지 않았다.원래의 의미는 당연히 <종족 이름 이> 혹은 <나라 이름 이>가 되어야 마땅한 글자이다.

중국역사상 중화의식이 성장한 후의 개념으로 변질한 그 의미를 그대로 쓸 이유가 없다. 김교수는 오랑캐 정신으로 새시대를 열자는 식으로 글을 쓴 모양인데 그 기본 발상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동이국가군이 일설 1000회에 육박하는 외침을 견디고 오늘까지 국가를 지켜온 힘을 강조하고 문화적 정신적 측면을 경시한 것인데 한국어의 고집을 버리고 영어를 공용화해야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 것은 우선 한국의 역사가 정신 문화 위주의 강력한 힘을 그 근간으로 하여 왔음을 경시한 것이다.

한국의 역사는 오랑캐로서 그 뛰어난 문화적 수용능력만으로 자신의 정신과 문화를 지켜왔다고 볼 수는 없다.동북아시아 국가-문명 형성기에 동이족은 문화와 힘에 있어 변방국가가 아니었다. 문명 형성의 현장에서 대등하게 격돌하면서 교류하고 현재까지 이어져온 문명의 형성 주체였다는 점을 촌시도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그는 한국인이 역사적 문화적 지긍심을 버려야한다고 말하여 우리의 문화 역량이 거품에찬 것으로 보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은 중대한 기본적 오판이다.

예를 들어 동이족은 문명권의 중심 사상인 유교의 당당한 형성자였다. 퇴계 율곡을 거론하기 전에 맹자에 소개된 순(舜)은 동이(東夷)사람이며 문왕(文王)은 서이(西夷) 사람이라는 말이 헛된 말일 수 없다. 동이족은 그 구이(九夷) 국가군의 일원이었다.더이상의 증거를 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최근 까지도 그와 같은 문명 본질에 대한 오해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가 중국문화를 1000년 이상 받아들이기만 한> 것으로 아는 식자들이 너무 많다.


<3>유교의 보편성

두웨이밍 교수는 최근 유교의 새로운 가능성이라든가 유교가 지닌 사상적 보편성을 강조하며 계속 강연하고 다니고 있다. 유교가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그의 주장을 극히 핵심을 설파한 말이다. 그러나 그의 강연에서도 유교 사상의 형성사에 대한 솔직한 견해는 찾아볼 수 없다. 유교 사상이 역사적 사상이며 특히 동북아시아 문명권적 차원에서 형성되고 발전된 <문명권적 차원의 성과>라는 말을 하기가 그렇게 어려워서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일반 역사의 기초 명제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이해지 못하였을 가능성은 전연 없다. 더구나 그가 그 중대한 사상 전통을 비역사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는 믿을 수는더욱 없다.또 아마 오직 중국인의 천재성에 의해 유교가 창조되었다고 믿지는 차마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양 사상사의 중심인 그리이스 철학과 오리엔트의 관계를 생각하면 쉽게 알 일이다. 그리이스도 기원전 5세기경 그들의 역사적 자신감과 천재성으로 철학을 성취하였다고 믿고 있지만 그들이 창조하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오리엔트를 서양 문명의 교사라고 부르는 것이 그 증거이다. 동이족과 유학의 관계는 오리엔트와 그리이스의 관계보다는 더 역동적이고 직접적이며 상호 영향적이고 동시대적으로 밀접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발상이 수용되고 숙고되지 않은 것은 아마 오히려 한국인의 자긍심 보다는 중화주의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3>결론

이상의 관점에서 위의 두 기사들은 소홀히 넘기지 못할 중대한 숙제를 우리에게 크게 각인시켜주었다는 것을 유념해야할 것으로 생각된다.적어도 유교사상에 관한한 우리는 유교의 사상-학문적 중심국가로서 자긍심을 아무리 가져도 부족함이 없고 오히려 그 자긍심이 너무 부족한 것이 지금의 현실 문제이다. 때로는 혹 우리에게 역설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우린 그렇게 한가한 문학적 상상적 역설을 즐길 여유가 전연 없다. 오랑캐로 돌아가자는 것은 너무 심하고 성립할 수 없는 자포자기의 역설임을 느낀다.


夏夷案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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